[어경선 칼럼] ‘머슴’들이 국민을 업신여기는 나라
[어경선 칼럼] ‘머슴’들이 국민을 업신여기는 나라
  • 어경선 논설위원
  • 승인 2020.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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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가 난리 난 듯 어지럽다. 연초에 발호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도통 진정될 기미가 없다. 가뜩이나 내리막이던 경제는 아예 고꾸라지고 있다. 문 닫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실업자도 늘어만 간다. 와중에 부동산 가격은 하늘 모르고 뜀박질이다. 물난리 등 크고 작은 사건 사고도 끊이질 않는다. 급기야는 북한군이 비무장 한 우리 국민을 총살하고 불태우는 비인륜적 만행을 저지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다가오는 추석이 무심하기만 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위정자들은 의당 국민의 아픔을 헤아리고 달래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 한편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등 민생을 돌보는 게 정상일 터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은 정치권과 고위 공직자들의 부도덕한 행태뿐이다. 그 잘난 ‘머슴’의 권세로 특혜 챙기기에 골몰하는 꼴이라니, 지쳐 있는 국민의 마음을 다독여주기는커녕 되레 염장을 지르는 격이다. 저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못된 짓거리’다.

아들 서 모씨의 ‘황제 병역’ 논란으로 입길에 오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딱 그 꼬락서니다. 추 장관 아들은 ‘엄마 찬스’로 휴가를 청탁하고 2차례나 전화로 연장했다는 등 특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런 논란에 휩싸인 것 자체로 이미 공정과 정의를 다루는 법무부 장관으로서는 결격 사유다. 물러나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도 추 장관은 ‘소설을 쓰고 있네’ 등 막말을 하며 오히려 앙앙불락이다. 권력에 취해 자리에 걸맞은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인지, 부러 모르는 체 하는 것인지, 볼썽사납다.

더 황당한 것은 응당 ‘특혜는 안 된다’고 해야 할 지도층이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논란의 당자격인 국방부,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 등이 다 한통속이 돼 추 장관을 비호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 마음에 생채기를 낸 추 장관의 사퇴를 건의하기는커녕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는 등의 황당한 얘기로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국민을 업신여기는 파렴치한 행태다.

국방부는 한 술 떠 뜨는 듯하다. 최근 드러난 국방부의 ‘법무부 장관 아들 휴가 관련’ 문건에는 이미 사실로 드러난 것에 대해서도 허위 답변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는 등 추 장관 아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추방부’‘서방부’라는 야유를 들어도 싸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고발된 지 8개월이 지나서야 서 씨 집을 압수수색하느니 관련자들을 소환하느니, 이제야 수사시늉을 하고 있다. 이미 무혐의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서 일병 구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게 당연하지 싶다.

꼴 난 권세로 사적인 이득을 챙기는 못난 자들이 어디 추 장관뿐이겠는가. 재산 형성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된 김홍걸 의원이나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 의원, 이스타항공의 대량 해고 사태에 지분 편법 증여 의혹까지 불거진 이상직 의원 등도 다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김 의원을 제명하고 윤 의원은 당직과 당원권을 정지했다. 이 의원은 탈당했다. 그 뿐, 세 명 모두 의원직은 그대로다. 누구 하나 부끄러움에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물러나는 법이 없다. 여론이 좋지 않으니 잠시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누구를 믿고 이렇게 다들 뻔뻔스러울까. 옳고 그름에 눈 감고 입 다무는 대통령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의 행보가 단적인 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제1회 청년의날 기념식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무려 37번이나 언급했다. 특히 병역 비리 등에 대해선 “공정에 대한 청년들의 높은 욕구를 절감하고 있고 반드시 부응하겠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추 장관 아들의 특혜 의혹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일언반구가 없었다.

그리고 이틀 후 문 대통령은 2차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 회의장에 추 장관과 나란히 입장했다. 청와대는 추 장관이 대통령을 의전상 ‘영접’하느라 기다리다 같이 들어오게 된 것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추 장관에 대한 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인 ‘이벤트’로 받아들여졌다. 문 대통령이 눈 ‘질끈’ 감고 제 식구를 챙긴 것이라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전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 때도 그랬다. 딸의 특혜 논란에 각종 비리 혐의에도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그러고는 사과는커녕 국민의 분노를 일으킨 조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며 오히려 그를 감쌌다.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 내는 대학 총장 표창장, 고등학생 수준을 뛰어넘는 의학논문 제1저자 등 온갖 비리성 특혜가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였다. 조 전 장관의 ‘당당함’도 역겨웠지만 ‘마음의 빚’ 운운한 대통령의 말은 더욱 거북스러웠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를 추구하겠다”고 했다. 지금 그 말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조롱하는 상징이 돼버렸다. 내편은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무조건 감싸고 옹호하는 것이 정의요 공정이라는 기만과 독선 때문이다. 지도자가 내 편만을 챙기면 사회는 병들게 마련이다. 사회가 병들면 나라는 어찌되겠는가. 속된 말로 ‘개판’이 될 게 뻔하다. 문 대통령이나 민주당, 그리고 그 패거리들이 스러지는 건 별 문제가 아니다. 이러다가 자칫 나라가 결딴날까 그 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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