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SK그룹, 통신사업 진출 '특혜'라고?...오해와 진실
[팩트체크] SK그룹, 통신사업 진출 '특혜'라고?...오해와 진실
  • 장민선 기자
  • 승인 2020.0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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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김영삼 정부서 한국이동통신 인수
통신사업 위한 ‘치밀한 준비’…1994년 정보통신사업 결실
국내 대표 이동통신사...세계 무대에서 기술력 인정 받아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 소송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노 관장 측의 반소 제기로 재산 분할 요청액이 1조 원대에 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과거 SK그룹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SK텔레콤 성장 과정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진=팍스경제TV]
[사진=팍스경제TV]

일각에서는 SK텔레콤이 사돈가인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되는 특혜를 받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요. 

과거 SK그룹이 대통령 사돈 기업이라는 후광으로 이동통신사업권을 획득해 주력 계열사로 성장시켰고, 이 과정에서 최태원 SK 회장의 장인인 노태우 정권과 연관이 있지 않겠냐는 겁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실제로는 노태우 전 대통령 시대가 아닌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 과정에서 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인수해 SK텔레콤으로 성장시킨 겁니다.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1992년 4월 체신부가 통신 부문의 경쟁체제 도입을 위해 제 2이동통신 민간 사업자 선정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오랜 기간 정보통신 사업을 추진해온 SK그룹, 당시 선경그룹도 대한텔레콤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동전화사업권 획득에 나섰습니다. 

같은 해 7월 실시된 제 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 컨소시엄은 포항제철, 코오롱, 동양, 쌍용, 동부그룹 등과의 경쟁에서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사업자로 선정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권을 잡고 있었던 노 전 대통령과 사돈지간이라는 이유로 특혜 의혹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특히 당시 집권당 대선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다음 정부로의 사업자 선정 연기를 강하게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정경유착에 대한 특혜시비를 우려해 선정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전격 반납합니다.

당시 반납 기자회견에서 손길승 사장은 "현 정부(노태우 정권)하에서 안 한다는 뜻"이라며 "오해받을 우려가 없는 다른 정권하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이동통신 사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992년 당시의 제2 이동통신 민간 사업자 선정 및 반납 과정에서 선정 결과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노태우 정권 때 정보통신사업에 진출해 성장한 게 아니냐"는 오해에서 특혜론까지 나오고 있는 겁니다.

[사진=팍스경제TV]
[사진=팍스경제TV]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그해 12월 체신부는 미뤄놨던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과 함께 당시 제1이동통신인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정부는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권한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위임했는데요. 

하지만 공교롭게도 당시 전경련 회장은 최종현 SK그룹 회장이었습니다.

최 회장은 특혜 논란을 우려해 제2이동통신 사업권 참여를 포기합니다. 대신 제2 이동통신에 보다 막대한 인수자금과 리스크가 뒤따르는 한국이동통신 주식 공개입찰경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한국이동통신의 주가는 민영화 발표 당시인 1993년 11월 8만원 수준이었습니다. 

선경그룹은 1994년 1월 24일과 25일에 걸쳐 실시된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의 주식 23%를 공개입찰 발표 당시보다 4배가량 높은 주당 33만5천원, 총액 4271억원에 인수해 숙원인 정보통신사업에 진출하게 됩니다. 당시 선경그룹 외에도 경남창업그룹 · 한신기술개발금융 · 파이스트 인베스트먼트 · 한국유통조사연구소 등 4개사와 개인 285명이 입찰에 참여했지만, 예정 가격 미달로 모두 주식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또한 같은 시기 함께 진행된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작업은 1992년 당시 2위와 3위 업체였던 포항제철과 코오롱 그룹이 연합한 신세기 통신으로 결정이 됩니다.   

결국 지금의 SK텔레콤은 제2 이동통신사업권자가 아닌 한국이동통신이라는 당시 KT 자회사의 민영화 경쟁입찰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노태우 정부 당시 통신사업자 선정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후 SK 텔레콤은 통신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2002년 신세기통신 합병을 통해 오늘날의 국내 1위 이동통신 회사로 발돋움했습니다.

이처럼 SK그룹의 통신사업 진출은 험난한 우여곡절 끝에 고 최종현 회장과 구성원들의 끈질긴 신념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 SK그룹은 1980년대 초부터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준비했습니다.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10년 뒤에 무엇을 해야 할지 늘 생각해야 한다"며 일찍부터 정보통신 분야를 그룹의 미래 중점 사업으로 정한 겁니다.

1984년 선경그룹은 미주지역 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하고, 여기에 당시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과정에 수학 중이던 최태원 회장이 합류합니다. 

1989년에는 미국 현지법인 유크로닉스(Yukronics)사를 설립하고 미국 내 이동통신 관련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 ‘US셀룰러’에 100만 달러를 투자합니다. 당시 선경 직원들이 US셀룰러로부터 월급을 받지 않는 대신 1년가량 작업 현장에서 이동통신 실무를 익히는 조건이었습니다. 

1991년 향후 통신사업을 이끌어갈 주체로 선경텔레콤을 설립하고, 이듬해 대한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통신사업 진출에 대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차곡차곡 치밀하게 준비해온 까닭에 1992년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도 월등한 점수 차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사업자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이고, 

이후 사업권을 반납한 뒤 실시된 1994년의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과정에서 막대한 리스크가 따른다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초고가로 공개 경쟁입찰에 도전해 정보통신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진=팍스경제TV]
[사진=팍스경제TV]

이후 SK텔레콤은 이동통신 세계 최초기록을 연이어 세우며 발전합니다.

1996년 1월, 세계 최초로 CDMA(2G) 디지털 이동전화 상용화에서부터 지난 해인 2019년 4월  5G 세계 최초 상용화까지. SK텔레콤은 세계 이동통신사에 숱한 이정표를 세우며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 무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부터 정보통신사업을 그룹의 미래 중점으로 선정하고, 미래를 준비한 고 최종현 회장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구성원들의 세계 최고를 향한 지속적인 도전과 혁신이 오늘의 SK텔레콤을 만들어 온 것입니다.

세간에 나도는 ‘특혜’라는 오해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SK텔레콤의 오늘입니다.

팍스경제TV 장민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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