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선 칼럼] 尹대통령 취임 100일, '희망고문'의 100일
[어경선 칼럼] 尹대통령 취임 100일, '희망고문'의 100일
  • 어경선 논설위원
  • 승인 2022.0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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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시대’를 열고 헌정사상 최초의 ‘도어스테핑’ 등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성적표는 초라하다. 48.56%의 득표율로 당선되고 취임 직후엔 50%를 넘어섰던 국정수행 지지도가 석 달 열흘 만에 20%대로 추락했다. 주요 지지층은 물론 중도층까지 대거 등을 돌렸다는 방증이다. 여느 정권의 말기 레임덕 수준보다도 못한 지경이니, 참으로 딱하다.
 
이해할 구석이 없지는 않다. 오랜 동안 정치권에 몸담아 온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초보 정치인’ 윤 대통령에게는 열성적인 지지자, 이른 바 ‘팬덤’이 없다. 지역 발판이 탄탄한 것도 아니다. 지지기반이 절대적으로 취약하다. 애초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상대 후보가 싫어서’ 또는 ‘정권교체를 위해서’ 윤 후보를 찍은 국민이 많은 때문 아니던가. 그렇더라도 100일 만에 지지율이 이처럼 급락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쉬 예상하지 못했을 터다. 

이는 윤 대통령이 자초한 탓이 크다. 국민은 그에게 ‘공정과 상식’에 입각한 국정운영을 기대하며 50%가 넘는 지지로 응원했다. 취임 22일 만에 치러진 ‘6·1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압승한 것이 그 증좌다. 하지만 이런저런 실정이 세간의 입길에 오르면서 민심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인사는 ‘망사(亡事)’로 흐르고, 정책은 혼선을 거듭하고, 여당은 내분으로 지새고...윤 대통령에게 과연 국정운영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된 국민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대통령실과 정부 요직에 검사 출신을 중용해 ‘검찰 편중’ 인사 논란을 낳은 것이 대표적이다. 능력주의를 명분으로 통합과 균형을 외면했다. 김인철·정호영·김승희 등 장관 후보자 3명이 잇달아 낙마함에 따라 부실 검증도 도마에 올랐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등과 사적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대통령실 채용 논란, 김 여사 지인의 나토 출장 동행 물의 등도 ‘공정과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개의치 않고 밀어붙였다. 민심을 거스르니, 민심이 떠나는 건 당연할밖에. 

공론화 과정 없이 불쑥 발표한 ‘만 5살 취학’ 및 외고 폐지 등 설익은 정책의 졸속 추진도 민심이반을 불렀다. 애먼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총대를 메고 취임 34일 만에 물러나야 했다. 경찰국 신설 강행은 윤 대통령의 일방통행 이미지를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그런 참에 불거진 윤 대통령의 ‘내부총질 당대표’ 문자 노출은 악화한 여론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윤핵관’과 이준석 전 대표 간의 갈등이 표면화하면서 민심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지경인데, 정부와 여당 하는 일이 고작 내부 권력다툼이라니. 

국민통합은 말뿐, 통합과 협치의 실체가 없었던 점도 지나칠 수 없다. 국정을 주제로 야당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일이 없다. 국회와의 소통에도 소극적이었다. 비판 여론에는 ‘문재인 정권보다 낫지 않느냐’는 식으로 전 정권 탓을 하며 초점을 비켜갔다. 중도층이 대거 돌아선 이유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인사 참사, 민생 외면, 경제 무능, 굴욕 외교, 안보 구멍, 정쟁 심화 등 끝이 없다”면서 “역대급 무능”이라고 평가했는데, 그런 얘기를 들을 만도 하지 싶다.

국민이 윤 대통령을 택한 것은 ‘상식과 공정’을 바로 세워 국민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도록 해 달라는 바람에서다. 경제를 회복시키고, 집값을 안정시키고, 일자리를 늘려 민생을 돌보라는 간절함에서다.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고 청년이 미래의 꿈을 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간곡함에서다. 하지만 지난 100일, 긍정의 변화를 느낄 국민이 얼마나 될까. 지지율 급락은 문재인 정권 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국민의 경고요, 대책 없는 희망고문은 이제 거두라는 국민의 명령인 셈이다.

물론 실망하기엔 이르다. 지지율이 대통령 평가의 절대적 기준도 아니고, 또 성과를 내기에 100일은 짧은 시간일 수 있다. 그렇다. 임기는 아직 4년 8개월여나 남아있다. 앞으로의 선택에 따라 미래는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 핵심은 ‘윤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의 표차 0.73%포인트를 되새겨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다. 겸손하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일대 쇄신으로 ‘공정과 상식’에 기반해 국정을 운영하라는 쓴소리를 가슴에 새기라는 고언이다.
 
윤 대통령도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이날 취임 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뜻을 최선을 다해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했다. 민생을 최우선으로 챙기면서 경제의 성장 동력과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붓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인사쇄신은 정치적 목적을 갖고 해서는 안 된다”며 “조금 시간 필요할 것 같다”고 한 대목은 실망스러웠다. 국정기조의 대전환을 위한 전면적 쇄신 여론과는 한참 동떨어진 인식 아닌가. 싸늘하게 식은 국민의 마음이 돌아설지 의문이다. 

지금 나라 안팎의 상황은 실로 엄중하다. 경제와 외교안보, 총체적 위기다. 민생 지표들은 처참하고 사회 갈등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어느 하나 만만한 과제가 없다. 헤쳐 나가려면 정부가, 대통령이 국민 지지를 바탕으로 추동력을 가져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통합과 협치, 소통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에 옮겨야 한다. 단순히 지지율 반전을 위한 보여주기가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쳐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원점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이제까지의 실정을 반면교사 삼아 지금 바로 ‘담대한 변화’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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