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악플에 시름 깊은 일반인·기업...사회적 비용 연 35조원
무분별한 악플에 시름 깊은 일반인·기업...사회적 비용 연 35조원
  • 김홍모 기자
  • 승인 2023.0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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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인터넷 포털 및 게시판 등에 악의적 비방 또는 비하를 목적으로 작성하는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악성 댓글은 자의적 또는 악의적 잣대로 상대방을 집요하게 공격해 극단적 혐오를 조장합니다. 개인을 우울증 또는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가 중요한 기업의 경우 경쟁력에 악영향을 입거나 기업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댓글이 처음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온라인 댓글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국민은 여전히 10명 중 9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악성 댓글로 인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변호사 선임비 및 의료비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국내에서만 연 35조원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만큼 악성 댓글의 폐해는 이미 심각한 수준입니다.

반면 악성 댓글에 대한 규제와 처벌은 미미합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무죄가 선고되거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며, 악성 댓글을 삭제하고자 할 경우에도 피해자가 일일이 포털 등 사업자에 요청하고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 합니다.

법조계 전문가는 “온라인 댓글 도입의 취지인 ‘표현의 자유’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자유가 아니다”라며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크다는 공감대가 확인된 이상, 포털 및 커뮤니티상 무분별한 악성 댓글에 대한 규제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 기업, 악의적 댓글에 존폐 위기 올 수도…사회적 손실 연 35조원 달해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의 경우 기업 또는 기업인을 향한 무분별한 비방성 악성 댓글로 사회적 평판 하락 등 자칫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입을 수 있습니다.

지난 2021년 한 직장인 SNS 사이트에 A기업 직원이 올린 글은 대표적 사례입니다. 작성자는 자신의 상사들이 ‘굉장한 꼰대’로 “마치 조현병 말기 환자들 같다”며 비난했습니다. 내용 중 특히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CEO의 여직원 성희롱 발언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해당 기업은 작성자가 허위 사실을 적시해 회사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강력 반발했습니다. 조사 결과 글을 올린 직원과 CEO의 사무공간은 전혀 다른 건물에 위치해 있었으며, 두 사람은 만난 적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문대행사가 돈을 받고 경쟁 업체를 비방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올리다 적발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2019년 3월, 인터넷 육아 정보 카페 등에 “B유업 우유에서 쇳가루 맛이 난다”, “B유업 목장 인근에 원전이 있어 방사능 유출 영향이 있을 것” 등 특정 기업을 비방하는 댓글이 무더기로 올라왔습니다. 피해를 입은 B유업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쟁 업체가 홍보대행사를 통해 50개의 아이디로 조직적 비방 댓글 작업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모 주류사가 경쟁사 소주에서 경유가 검출됐다는 의혹 글을 퍼나르거나, 온라인 입시교육업체가 댓글 전문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악플 20만여 건으로 경쟁 업체와 소속 강사를 비난한 사실이 적발돼 법원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관해 재계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허위 사실이라 할지라도 인터넷상에 퍼지게 되면 영업과 채용 등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고 토로했습니다.

연세대 바른ICT연구소에 따르면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 35조 3,480억원에 이릅니다.

악성 댓글 대응을 위한 변호사 선임과 손해배상비용 등으로 3조 5천여억원이 쓰였고, 피해자의 병원 진료 및 치료 비용으로 550억원이 지출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인터넷 뉴스 이용자 중 약 1%에 불과한 댓글 작성자들로 인해 지난해 국내 GDP의 약 1.6%에 달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 셈입니다.

◆ 악성 댓글, 일반인도 가리지 않는 무분별한 비방 포화…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악성 댓글의 공격 대상은 일반인도 가리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합니다. 한 번 악성 댓글이 달리게 되면 경쟁적으로 더 강하고 자극적인 댓글이 달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지난해 12월 이태원 참사로 친구를 잃은 10대 생존자가 서울 마포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심리치료에도 계속되는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 같은 선택의 배경에는 무분별한 악성 댓글이 있다는 후문입니다. 숨진 참사 생존자의 가족은 “숨진 친구들을 모욕하는 듯한 댓글을 보면서 굉장히 화를 많이 냈다”며 “혼자만 살아남은 것이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비난 댓글을 보고 무너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참사 직후 인터넷 포털과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는 “놀러가서 죽은 것인데 애도하지 않겠다”, “죽어도 싸다” 등의 비방성 댓글은 물론, 이번 참사가 마약과 연관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담긴 악성 댓글이 무차별적으로 올라왔습니다.

이처럼 대다수 일반인도 인터넷과 SNS 등이 일상 속으로 깊이 파고들며 무분별한 악성 댓글의 타깃이 되고 있습니다. ‘참교육’이라며 신상 털기를 하거나, 한 번 악성 댓글이 달리고 나면 경쟁적으로 더 강하고 자극적인 댓글이 달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연세대 재학생 이 모 군은 지난해 수업 시간 중 교내에서 집회를 열고 고성능 스피커와 꽹과리를 동원해 최대 95데시벨(dB)의 소음을 일으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측을 향해 수 차례 스피커 볼륨을 줄여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한 달여 간의 요구에도 변화가 없자 이 군은 업무 방해 등 혐의로 노조 측을 경찰에 고소했는데, 이 소식이 힘 없는 노동자와 명문대생 간 공방으로 알려지면서 “톱으로 얼굴을 산 채로 썰어 버리고 싶다”, “6개월 안에 자살하게 만들겠다” 등의 무분별한 악성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이밖에 지난해 9월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가족 역시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희생자의 삼촌은 “한녀(한국 여성)가 죽는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 등의 댓글을 보며 “같이 숨 쉬고 같은 공간을 살고 있는 시민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며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 악성 댓글 처벌 대부분 ‘벌금형’ 그쳐…"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도입해야"

현행법상 악성 댓글을 달아 적발되면 형법상 모욕죄로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백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인정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형이 가능하고, 만일 댓글 내용이 허위일 경우 처벌 수위는 더욱 높아지게 됩니다.

하지만 사법부에서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되더라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단순 일회성 악성 댓글로 처벌받는 경우는 사실상 없고, 댓글이 허위라 하더라도 비방 목적이 없었거나 공익성을 인정받으면 유죄 선고를 피할 수 있습니다.

21대 국회 들어 악성 댓글 작성자의 처벌 수위를 높이거나, 사이버 혐오∙차별 정보 유통죄 신설 등 총 9건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어떠한 법안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형사 처벌 강화 주장이 표현의 자유 약화 우려에 번번히 가로막힌 탓입니다.

이에 따라 민사적 해결책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경고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미국 등 해외 국가들 역시 유사한 규제를 이미 시행 중입니다.

한 전문가는 “비방성 악성 댓글은 익명이라는 가면 속에 숨어 욕설과 모욕을 쏟아내 사회적 소모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행복추구권 등 다른 국민들의 헌법상 권리 역시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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