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이슈] "4세대 실손보험을 어쩌나"...가입자·보험사 모두 '고심'
[마켓이슈] "4세대 실손보험을 어쩌나"...가입자·보험사 모두 '고심'
  • 장민선 기자
  • 승인 2021.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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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쓰면 많이, 적게 쓰면 적게
- 병원 이용빈도 따라 유불리 뚜렷
- 실손보험 적자에 잇달아 판매 중단
[자료=금융위원회]
[자료=금융위원회]

의료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를 부담하는 '4세대' 실손건강보험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우선 보험료 책정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중이다. 보험 갈아타기를 고민하는 가입자들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4세대 실손보험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 지 관심이 집중된다.

◆ 보장 체계 대폭 변경 "많이 쓸수록 많이"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손해보험사 10곳, 생명보험사 5곳 등 15개 보험사가 이달부터 '4세대 실손건강보험'을 판매한다. 4세대 실손보험은 일부 가입자의 의료 과잉으로 인한 손해율 급등을 막고 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보장체계가 대폭 변경된 상품이다.

보험금을 많이 탈수록 보험료를 더 내는 구조로, 불필요한 보장은 줄이고 자기부담금을 높이도록 설계됐다. 실손보험 신규 가입자는 4세대 실손에 가입해야 한다. 반면 기존 가입자는 기존 보험 유지와 4세대 실손 가입 중 선택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보장 종목 확대 등 일부 사항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심사 없이 보험 전환이 가능하게 하는 등 갈아타기 문턱을 낮춰놨다. 전환 후 6개월 이내 보험금 수령이 없는 경우에는 계약 전환을 철회하고 기존 상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또 4세대 실손보험 상품으로 갈아타더라도 전환 전 계약(3세대 실손)의 무사고 할인 적용을 위한 무사고 기간을 인정받을 수 있다. 기존 상품과 4세대 상품의 보장 내용 등에 차이가 있으므로 본인의 건강상태, 의료이용 성향 등을 고려해 전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보험료 차등제가 적용되는 만큼 병원을 많이 이용하고, 비급여 치료를 많이 받으면 기존 보험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반면 젊은층의 경우 기본 보험료가 저렴한 4세대 실손으로 갈아타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4세대 실손보험의 보험료는 40세 남자 기준 1만929원 수준이다. 구실손보험료(1세대)는 3만6679원, 표준화실손(2세대) 보험료는 2만710원으로 각각 2만5750원(약 70%), 9781원(약 50%) 저렴하다. 3세대 보험료(1만2184원)와 비교해도 10%가량 저렴하다.

4세대 실손의 자기부담금은 급여와 비급여 각각 20%, 30%로 높아졌다. 또 직전 1년간 비급여 지급보험금에 따라 5등급으로 나눠 특약 보험료가 할인·할증된다. 지급한 보험금이 없으면 5% 안팎의 보험료 할인을 받지만 비급여 보험금이 300만원 이상이면 보험료가 4배(할증률 300%)로 오른다.

이밖에 4세대 실손은 기존 비급여 항목이었던 불임 관련 질환(습관성 유산·불임, 인공수정 관련 합병증), 선천성 뇌질환 등이 급여 항목에 새로 포함됐다. 또 돈을 더 내고 따로 가입해야 하는 비급여 항목의 보장은 제한해 MRI나 도수치료는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가 할증된다.

[자료=금융위원회]
[자료=금융위원회]

◆ 우려 목소리도 "병원 이용량 많으면 보험료 상승"

보험료 책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의료이용량이 적은 2030세대의 경우 보험료 할인을 받을 수 있는 4세대 실손보험이 유리할 수 있다. 문제는 젊은층이 향후 50~60대에 접어들며 병원 이용량이 많아질 경우다.  

또 금융당국이 제시한 비급여 가격 비교 후 병원 방문 방안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은 설명자료집에서 4세대 실손 전환을 유도하며 가입자가 직접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확인한 후 가격이 저렴한 곳을 비교해 병원을 방문하는 것을 권유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실손보험의 장점은 가입자가 어느 병원에 가서 어떤 치료를 받더라고 해당 치료비 분을 보험금으로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실손보험 가입자가 직접 진료비가 저렴한 병원을 비교 후 방문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밝혔다.  

또 할증폭에 비해 할인폭이 너무 적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1년간 보험금 청구액이 없을 경우 5%를 할인해준다. 병원 이용이 거의 없는 2030세대의 평균 실손보험료는 1만~2만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비급여 특약보험료가 1만원이라 해도 5%면 할인금액이 500원에 불과하다.  

◆ 보험사들의 고민 "실손보험 팔수록 손해"

보험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적자 구조’에 들어서 있는 보험사의 실손보험 관련 손해율 개선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부 보험사들은 4세대 실손보험 출시를 앞두고 출시를 포기하기도 했다.

금감원 집계를 보면 지난해 손해보험사의 실손의료보험 손해율은 127.3%에 달하고, 합산비율은 123.7%였다. 합산비율은 발생손해액과 실제사업비의 합을 보험료 수익으로 나눈 비율로, 100%를 넘기면 보험사는 적자를 봤다는 얘기다. 특히 1세대 상품의 합산비율이 136.2%로 가장 높았다. 

생명보험사의 손해율은 손보사 대비 20%가량 낮은 수준이었지만 100%를 넘기며 수익성의 개선세가 보이지 않자 일부 생명보험사는 올해 초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했다. 생명보험협회에 정·준회원사로 등록한 26개 생명보험사 가운데 삼성·한화·교보·NH농협·흥국생명 등 5곳만이 4세대 실손보험 출시에 동참했다.

지난달 24일 동양생명은 저조한 판매실적과 높은 손실율을 이유로 4세대 실손보험 상품을 출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ABL생명도 고민을 거듭한 끝에 출시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동양생명과 비슷한 이유로 실손보험 판매 중단을 공표했다.

두 회사는 4세대 실손보험 상품을 내놓지 않아 신규 가입은 중단했으나 기존 실손보험 가입자의 4세대 전환 가입은 접수·운영한다. 이 같은 실손보험 포기 움직임은 4년 전부터 포착됐다. 2017년부터 푸본현대생명, KDB생명, KB생명 등이 손을 들었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신한생명, 미래에셋생명 등이 동참했다.

보험사들이 줄줄이 실손보험 판매를 그만두는 것은 팔아도 적자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당국은 4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하면서 보건당국과 협력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과잉의료 방지를 통해 실손보험 가입자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제도’ 등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민관의 공감대 형성에도 실제 손해율 개선은 기존 가입자들의 4세대 실손보험 신계약과 기존 계약 전환 수요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보험료 할인·할증과 본인 부담률 상향에 따른 ‘의료 쇼핑’ 억제 효과는 3년 후에나 적용될 예정이다.

또 보험사 입장에서 적자가 가장 심한 구(舊)실손보험 가입자의 전환 의지도 중요하지만, 실제 전환율이 높아도 적자폭이 줄어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3세대때도 기존 가입자들에게 새 실손 상품으로 갈아타라는 권유를 많이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구실손 가입건수도 많이 줄었지만 손해율은 더 높아졌다"며 "보험은 공익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손실을 감내할 필요가 있지만 더 이상 매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앞으로도 (실손보험 운용을) 포기하는 보험사가 추가로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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