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의 등장에 국내 반도체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딥시크는 저성능 반도체 칩을 활용해 고성능 생성형 AI를 구현했습니다. 기존 AI 모델 개발에서 핵심이었던 고기능 반도체 칩의 필요성을 줄인 것입니다. 그간 엔비디아에 고성능 HBM을 공급하며 기술 개발에 집중해 온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전략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전망입니다.
◆ 저비용·고성능 딥시크 출현…AI 시장 지각변동
딥시크는 자체 개발한 AI 모델 '딥시크-R1'을 공개해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엔비디아의 저사양 칩 H800을 활용해 600만 달러 미만의 비용으로 2개월 만에 고성능 AI 모델을 구축한 점이 화제가 됐습니다. 1억 달러가 투입된 챗GPT와 비교했을 때 비용이 16분의 1 수준이지만, 성능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AI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접근성을 높이는 등 폐쇄형 전략을 고수하는 오픈AI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딥시크의 등장으로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큰손'으로 불리는 엔비디아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고성능·고비용을 강조해 온 엔비디아의 전략에 제동이 걸린 것입니다. 딥시크 발표 직후 엔비디아의 주가는 17% 폭락했으며, 시가총액은 6000억 달러가 증발하기도 했습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딥시크는 '더 적은 데이터와 모델 사이즈'로 오픈AI 성능을 넘어섰다"며 "무료로 공개된 딥시크-R1은 오픈AI 생태계 전반에 대한 수익성 우려를 야기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 미·중 반도체 제재 심화…HBM 시장 불확실성 확대
예상치 못한 대외 변수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후폭풍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데이터, 더 큰 모델, 더 강력한 연산 능력을 투입할수록 AI 성능이 높아진다"는 '규모의 법칙'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성능 칩으로도 고기능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면 HBM을 탑재한 AI 칩의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고사양 HBM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전망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작년 4분기 HBM이 D램 매출 중 40% 이상을 차지했으며, 엔비디아를 상대로 5세대 HBM인 HBM3E를 사실상 독점 공급 중입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12월 엔비디아로부터 HBM3E 8단 제품 공급을 승인받았습니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딥시크의 등장은 초고가 최신 엔비디아 GPU 및 내장 고용량 HBM의 고성장에 의문점을 부여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대중 수출 제재 강화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조아인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중 반도체 전쟁이 심화될 양상이다. 새로운 경쟁자로 등극한 중국이 부담스러운 미국은 추가적인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반도체 비중이 높은 한국 시장에서 중국 반도체 제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기업들에게 중국은 전략적으로 외면할 수 없는 핵심 시장입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중국 매출 비중은 각각 16.1%, 29.8%에 달합니다.
◆ 딥시크발 AI 혁신…반도체 업계, 새로운 성장 기회
딥시크 등장이 AI 산업 전반의 새로운 기회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옵니다. 김승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딥시크가 인정받고 있는 소형 모델의 효과적 학습 기술은 단기적 관점에서 엣지 AI와 온디바이스 AI 산업에 기회를 제공한다"며 "현장 연산이 필요한 엣지 AI와 네트워크 연결 없이 연산이 필요한 온디바이스 AI에 탑재되는 소형 AI 모델이 높은 효율을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장기적 관점에서는 AI 산업 전반의 수요 증가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AI 학습 효율화가 AI 모델 수요 증가로 이어져 산업 전반에서의 AI 수요를 높일 수 있으며, 소형 AI 모델 비용 절감은 진입장벽을 낮춰 중·소형 AI 기업들의 시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SK증권은 저비용·고효율 AI 모델의 훈련 및 추론을 위한 커스텀(Custom) HBM 등 최적화 메모리 수요도 점증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삼성전자도 장기적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딥시크발 충격에 대해 "시장 내 장기적 기회 요인과 단기적 위험 요인이 공존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GPU(그래픽처리장치)에 들어가는 HBM을 여러 고객에게 공급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업계 동향을 살피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AI 생태계가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AI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딥시크에 대한 정보가 현재 제한적이라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중장기적으로 AI 생태계 저변 확대 측면에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성장하는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