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라는 공간 통해 환상적인 분위기 표현
[팍스경제TV 박준범 기자]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죠"라는 극 중 '재연'(문근영 역)의 대사. <유리정원>의 '재연' 캐릭터는 순수 그 자체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더욱 상처를 잘 받는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관심과 위로가 필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 위로받고 힐링하고 싶어하는 우리네 삶을 '재연'이라는 인물에 투영되어 있다.
<유리정원>은 신수원 감독의 작품으로, 2017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하다.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던 과학도 '재연'은 후배에게 연구 아이템을 도둑맞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빼앗겨 어릴 적 자랐던 숲 속의 유리정원 안에 스스로를 고립한다. 한편, 첫 소설의 실패로 슬럼프를 겪던 무명작가 ‘지훈’(김태훈 역)은 우연히 알게 된 재연의 삶을 훔쳐보며 초록의 피가 흐르는 여인에 대한 소설을 연재해 순식간에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다.
영화 초반에는 '재연'의 시선에서, 중반부터는 '지훈'의 시선에 집중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후배에게 상처를 받은 '재연'은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다. 그리고 '지훈'은 계속된 실패와 원로 작가와 다툼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고립'상태에 빠지게 된다.
두 사람은 같은 집, 전후 입주자로 인연이 이어진다. '재연'이 벽에 남긴 "그녀는 숲에서 태어났다.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몸 속엔 초록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를 본 '지훈'은 곧장 '재연'에게 향한다. 그리고 '지훈'은 그녀를 관찰하며 소설의 영감을 얻고 그의 소설은 인기작가 반열에 오른다.
숲이라는 공간은 <유리공원>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인데,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표현된다. 가끔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수원 감독은 "상처받은 여자가 환생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나무로 환생하는 신화같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재연'이 머무는 유리 공간으로 가기 위해선 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 다리 밑은 물이 썩어가고, 물고기들이 죽어있다. 하지만 그 다리만 넘어가면 울창한 나무들이 가득한 숲으로 이어진다. 이 다리가 이상-현실을 이어주는 혹은 속세-자연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셈이다. 피톤치드가 쏟아지는 초록과 옅게 비치는 햇빛. 그리고 노래하는 것 같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 울창함을 나타내는 나무들의 괴이한 형태가 반복되며 분위기를 압도한다.
떄문에 전개과정이나 표현하는 그림들이 다소 난해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문근영과 서태화, 김태훈이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흡인력은 대단하다. 특히, 문근영은 기존의 귀엽거나 예쁜 이미지를 탈피해 고독함과 외로움을 잘 표현해낸다. 신수원 감독이 표현한 "순수의 화신" 말고는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 순수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 특히 그녀의 광기어린 눈빛은 그녀가 처한 상황과 그녀가 받은 상처의 정도를 짐작케 해준다.
문근영은 '재연'이라는 인물에 대해 "고독하지만 누가와서 찾아주길 바라는, 관심에 목 마른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재연'이 머무는 유리공원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는 "자유롭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남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고 들켜도 괜찮은, 그래서 부셔졌으면 하는 공간인 것 같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나무가 되고 싶다'는 다소 현실성 없는 독보적이면서 신선한 소재와 스토리.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 3명이 모두 나무가 되어가는 이상함, 아니 괴이함. '지훈'은 병으로 인해 몸이 굳어가고, '재연'은 진짜 나무가 되고 싶어하고, '정교수'는 인공혈액이 투입되며 나무로 변해가는 과정이 중첩된다.
하지만 "나뭇가지는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뻗는다.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영화 중 내레이션. 이를 통해 큰 상처를 받은 '재연'이 나무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어쩌면 당연함을 보여준다 .
그리고 '재연'이 '지훈'에게 남기는 "손이 참 따뜻하네요"라는 대사. 문근영은 "늘 외롭고 아팠는데 마지막에 따뜻함을 느꼈음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것이 단순히 '재연'이라는 인물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닌, 무수한 상처를 안고 사는 우리들에게 신수원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