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선거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질문들이 남아 있다. 다가오는 2026년 6월 30일이면 영광군의회 의원으로서의 임기도 마무리된다. 임기 종료를 앞둔 지금, 나는 다시 삶을 묻고 있다.
언젠가 거리에서 유권자와 마주치게 된다면, 혹여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더라도 부디 고개만은 돌리지 말아 달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어 본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나는 땅에 떨어진 명함을 다시 주울 각오가 되어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오늘도 나는 한참을 침묵한다.
참담했다. 지난 선거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려 하지만,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죄인이 된 것처럼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해야 했다. 의장이라는 직함과 군의원이라는 신분이 아직 남아 있는 시간 속에서, 패배의 무게를 안고 마지막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현실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패배의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허전함도 쉽게 감출 수 없었다. 결과가 발표되던 날 전화기를 놓지 못한 채 벨소리만 기다리던 초조함은 아직도 남아 있다. 누군가는 한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끝까지 말을 아꼈다. 결과가 확정된 뒤 가장 먼저 들은 말은 “고생했다”였다. 그 한마디에 지난 몇 달, 아니 지난 몇 년의 시간이 모두 담겨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온전한 위로가 되지 못했다.
선거 패배는 삶의 의욕마저 꺾어 놓는다. 더 이상 낙담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좌절이 반복될수록 희망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 길어졌고, 마음 한편의 안타까움은 더욱 복잡해졌다. 선거운동은 캠프의 일상을 늘 같은 방식으로 흔들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집을 나서고, 밤늦게야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시장 입구에서 허리를 숙이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손을 내밀고, 들판으로 나아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느새 그것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 되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가족도 함께 버텼다. 선거운동 기간 중 계단에서 넘어져 몸이 불편했던 아내는 그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도 말없이 아침 밥상을 차려주었다. 사과를 깎아주고, 달걀프라이 해주는 그 마음이 고맙고 미안했다.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고생하지 않았을 사람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너무도 무거웠다.
선거과정에서 “믿어 달라”, “일 잘하겠다”, “영광군과 군민을 위해 더 큰 일을 하겠다”며 건넸던 명함이 눈앞에서 버려지는 모습을 보거나, 바닥에 나뒹구는 명함을 주워야 했던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팠다.
누가 볼까 두려워 몸을 낮추던 그 순간, 간신히 버티고 있던 자존감은 무너졌다. 그 장면은 가짜뉴스나 비난의 말보다 더 깊은 상처가 되어 마음 한편에 오래 남았다.
“깜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말도 들었다. 못 들은 척하려 애썼지만,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했던 말들은 때로 생살을 도려내는 상처가 되었다.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왜 이런 시간을 견뎌야 하는지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에서 싹트기도 했다.
선거 패배와 함께 더 크게 다가온 것은 결국 현실이었다. 수억 원에 이르는 선거비용은 한 가정의 삶을 흔든다. 처음 도전했을 때는 의지였고, 두 번째 도전은 기회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정치는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써야 하는 일이었다. 두 번의 단체장 선거 이후에는 그것이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쌓여가는 빚과 보험료 등으로 집안의 대화는 점점 날카로워졌고, 일상이 흔들리며 생계 앞에서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낙선 이후 내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것은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아내는 이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한다. 돈을 벌지 못하면 보험을 해약해야 한다는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난 19년의 의정활동 동안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절박하게 살아왔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19년 동안 군민의 삶을 살펴왔지만, 정작 우리 가족의 살림은 나아지지 못했다. 오히려 빚과 상처, 찢겨진 성적표 같은 현실을 남겼다. 참으로 야속한 일이다. 오랜 세월 일을 했다면 통장의 숫자가 늘고 재산이 쌓이는 것이 보통일 텐데, 우리 같은 직업은 늘어나는 것보다 줄어드는 것이 더 많았다. 공무원에게는 연금과 퇴직금이라도 있지만 기초의원의 마지막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한 가장으로서 삶의 무게가 주는 깊은 신음도 이번 선거를 거치며 더욱 절실히 느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삶의 무게,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좌절감, 변화를 원하면서도 그 변화를 쉽게 믿지 못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벽과 마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비록 결과는 아쉬웠지만, 그 과정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선거라는 도전 속에서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향한 진심이었다. 그 진심만큼은 우리 캠프 모두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은 더욱 타들어 갔다.
이제 우리 가족과 캠프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예전과 같은 일상은 아닐 것이다. 몇 번의 선거를 치르며 우리는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고, 더 조심스럽게 하루하루 삶의 짐을 짊어진 채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듯 또 다른 시간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무게 덕분에, 더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정치는 한 사람의 결심만으로 감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선택은 가족의 삶을 흔들고, 함께한 사람들의 마음에도 오래 남는 흔적을 남긴다.
이 모든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의 삶이 지난날보다 더 가시밭길이 될 수도 있음을 고해성사하듯 털어놓는다. 남은 임기 동안에는 의장으로서, 군의원으로서 마지막 책임을 다하고 싶다. 그리고 임기가 끝난 뒤에는 한 사람의 군민으로 돌아가, 다시 삶을 배우고 견디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끝난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