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수원의 자랑스러운 여성들을 기억합니다”
세계 여성의 날…“수원의 자랑스러운 여성들을 기억합니다”
  • 성은숙 기자
  • 승인 202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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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여성 3인 돌아보기
수원시 가족여성회관이 진행 중인 ‘나부터 돌봄 챌린지 #소중한 나를 안아주세요’ /수원시 제공

[수원=팍스경제TV]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를 기념해 1975년부터 UN이 지정한 날로 수원에도 자랑스러운 역사 속 여성들이 있습니다.

수원의 명예를 드높인 공적으로 귀감이 된 인물을 선정해 조명하고 있는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김향화(1897~미상), 안점순(1928~2018), 이선경(1902~1921) 등 세 명입니다. 어두운 시대 상황과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딛고 수원을 넘어 대한민국을 빛낸 여성들의 삶을 기억해 보겠습니다.

‘총칼 앞에서도 의로웠던 기생’ 김향화 /수원시 제공 

◇‘총칼 앞에서도 의로웠던 기생’ 김향화

김향화는 일제 강점기 매서운 총칼 앞에 의롭게 맞선 수원의 기생이었습니다.

1897년 7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난 김향화의 본명은 순이였습니다. 생계가 어려워 불과 15~16세 때에 나이 차이가 많은 남편과 결혼했지만, 18세가 되던 해에 이혼했고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생계가 어려워진 가족들이 수원으로 이주하면서 김향화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습니다. 1918년 발행된 ‘조선미인보감’에서 김향화는 검무와 승무에 능하고 구슬프고 애절하게 노래를 잘한다고 소개됐습니다.

당시 수원의 기생들은 의기가 높았습니다. 1월 21일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27일 20여 명의 수원기생들이 상복을 차려입고 서울 대한문 앞으로 가 망곡례를 올린 내용이 매일신보에 기록돼 있을 정도입니다. 또 자선공연을 통해 발생한 수익금을 수원상업강습소 학생들을 위해 내놓기도 하는 등 높은 민족의식으로 사회적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특히 1919년 3월 들불처럼 번졌던 수원지역 만세운동 중 김향화를 중심으로 한 수원예기조합 기생들은 일제의 총칼에 용감하게 맞섰습니다. 3월 29일 자혜의원(화성행궁 봉수당)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던 30여 명의 기생들이 경찰서 앞에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만세를 외쳤고 선두에는 김향화가 있었습니다. 일본 경찰과 수비대가 총칼을 들이대며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합세해 시위 규모가 커졌다고 합니다. 김향화는 경찰에 잡혀 주모자로 지목됐습니다.

이후 김향화는 2개월여의 감금과 고문 끝에 징역 6개월 판결을 확정받았습니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기생 김향화 재판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청객으로 참석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고 합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19년 10월 가출옥한 김향화는 수원으로 돌아와 이름을 ‘우순’이라고 바꾸고 지내다가 서울로 이주했다는 것 외에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가난으로 기생이 되어야 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향화에게는 2009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습니다. 수원시가 공훈을 발굴해 서훈 신청을 이끌었으며, 표창장과 메달은 수원박물관 수원의 독립운동가 코너에 전시해 시민들에게 드높은 의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딛고 평화를 만든’ 안점순 /수원시 제공 

◇‘고통을 딛고 평화를 만든’ 안점순

안점순은 끔찍했던 위안부 피해를 세상에 널리 알리며 수원시민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평화활동가입니다.

1928년 12월 2일 서울에서 태어난 안점순은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효심 깊은 소녀로 자랐습니다. 안점순은 ‘방앗간 앞으로 모이라’는 말에 저울에 올라섰던 열네 살, 트럭에 그대로 실려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습니다. 어딘지도 모를 사막 같은 곳에 끌려가 고통스러운 생활과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3년을 버티다 전쟁 끝 버려진 안점순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광복군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석 달을 앓아누웠던 안점순은 또다시 전쟁을 겪으며 피난생활을 하는 등 고된 삶을 이어갔습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1991년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공개된 뒤 조카가 피해자로 등록만 했을 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지원 단체 등이 끊임없이 문을 두드린 끝에 할머니가 된 75세 안점순은 세상으로 나와 날갯짓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대사관 앞 수요 시위에 참석하고, UN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해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국제노동기구 심포지엄에 참여하고,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전쟁의 피해를 낱낱이 밝혔습니다.

안점순의 활동은 수원지역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활동의 밑거름이자 원동력이 됐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건립기금 7000여만원을 모아 2014년 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에 평화비가 세워졌습니다. 또 이를 계기로 수원평화나비가 창립돼 수원시와 자매도시인 독일 프라이부르크시에 유럽 최초의 평화비를 세우려 했으나 일본의 조직적인 방해로 무산됐습니다.

안점순과 수원시민의 끈질긴 노력은 2017년 3월 독일 레겐스부르크 인근 네팔 히말라야 파비용 공원에 ‘순이’라는 이름의 소녀상을 세우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89세 노인이 된 안점순은 제막식에 참석해 “험한 세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고 이후 1년여 만인 2018년 3월 30일 고단했지만 아름다운 삶을 마감했습니다.

수원시는 고통을 딛고 평화운동가로 거듭난 수원의 자랑스러운 여성 안점순을 수원시민사회장으로 배웅하고, 명예의 전당에 수원을 빛낸 인물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또 수원시가족여성회관 내에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을 만들어 그의 활동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습니다.

‘독립을 위해 불태운 열아홉 열정’ 이선경 /수원시 제공 

◇‘독립을 위해 불태운 열아홉 열정’ 이선경

‘수원의 유관순’으로 알려진 이선경은 꽃 같은 19세의 나이에 순국한 수원지역 여성 독립운동가입니다.

이선경은 1902년 5월 수원군 산루리(현 수원시 중동)의 유복한 가정에서 2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나 1918년 수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숙명여학교로 진학해 1919년 3월 만세시위에 참여해 구속됐다가 무죄 방면됐습니다. 특히 수원지역에서 김세환의 시위 계획에 참여한 이선경은 각지의 연락업무를 담당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치마폭에 비밀문서를 숨기고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대전, 청주, 안성 등지로 수십 차례 비밀 지령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이후 2학기에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한 뒤 수원에서 서울로 유학하던 여성 동지들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선경은 1920년 6월 서호 부근에서 박선태 등과 만나 수원 최초의 비밀결사 ‘구국민단’을 결성하고, 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통학하는 지식인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매주 금요일마다 삼일여학교(현 매향중)에서 만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활동을 알리는 내용을 수원지역에 배포하는 논의를 했고 특히 이선경을 비롯한 여학생들은 임시정부의 간호원이 되어 독립운동을 돕겠다는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두 달여 만에 구국민단의 활동이 발각되면서 이선경도 체포되고야 말았습니다.

이선경은 체포 이후 일제 경찰에 심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1921년 4월까지 140일간 구류됐는데, 이 기간 병을 얻어 재판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마지막 재판일이었던 1921년 4월 12일 궐석재판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방면된 이선경은 수원으로 돌아왔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지 9일 만인 4월 21일 순국했습니다. 병원에 가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이선경은 심문 과정에서도 독립을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고 석방된다면 다시 이 운동을 벌일 생각인지 묻는 일제에 “석방되어도 다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소”라고 답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선경은 순국 91년 만인 지난 2012년 3월 1일 건국포장 애국장에 추서됐습니다. 수원시는 명예의 전당에 그 자랑스러운 수원의 여성 이선경을 헌액해 기억하고 있습니다.

◇수원에서 만나는 세계 여성의 날

수원시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 115주년을 기념한 연계 전시가 마련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오는 10일까지 ‘수원시 여성문화공간 휴’의 로비와 계단 등에서 진행되는 특별프로그램 ‘2023 국립여성사전시관 순회전’입니다.

전시는 역사 속 여성 인물과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의 가치와 의미를 알려주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수원 출신 서양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1896~1948),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여성운동가인 이태영(1914~1998),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권기옥(1901~1988),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최은희(1904~1984) 등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 속 여성 인물 10여 명의 활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1898년에 발표돼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효시로 볼 수 있는 여권통문에 대한 설명과 여성운동 발전사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눈여겨볼 만합니다.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로 수원시 가족여성회관의 ‘나부터 돌봄 챌린지 #소중한 나를 안아주세요’도 진행됩니다. 오는 11일까지 나를 안아주는 사진을 홈페이지나 SNS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으로는 8일 가족여성회관 교육관 1층 로비에서 세계 여성의 날 역사와 의미를 알려주는 전시와 응원 메시지 게시, 챌린지 참여자 사진 전시 등을 진행합니다.

시 관계자는 “수원시는 여성 인권을 위한 다양한 사업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차별 없이 성 평등한 수원시가 될 수 있도록 세계 여성의 날에 대한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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