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간다] '힙(HIP)'하고 '쿨(COOL)'내나는 '혜안의 경영인' 최종현
[기자가 간다] '힙(HIP)'하고 '쿨(COOL)'내나는 '혜안의 경영인' 최종현
  • 이형선 기자
  • 승인 2020.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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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의 경영인' 최종현 회장, 바이오산업 초석 마련
-'미래 먹거리' 정보통신 사업 진출...NO.1 통신기업 꿈 실현
-2대 이어온 SK '인재경영'...세계수준 학자 산실

미국 FDA 승인을 얻은 뇌전증 신약으로 2020년 IPO(기업공개) 최고 대박을 친 SK바이오팜. 최근 빌게이츠가 K방역 관련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편지를 보내며 ‘콕’ 찍어 언급한 국내 백신개발의 대표주자 SK바이오사이언스. 이 두 회사의 성공의 근원에는 故 최종현 SK 회장의 ‘혜안’이 있었습니다.

SK그룹이 에너지·화학 분야를 중심으로 성장하던 1980년대 후반, 故 최종현 회장은 바이오·제약 산업을 미래성장동력으로 정하고 관련 분야에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사내에 의약사업본부를 신설하고, 1990년대엔 미국 뉴저지에 의약개발 전문연구소를 세웠습니다.

최종현 회장의 뒤를 이은 최태원 회장도 지난 2002년 "바이오 부문을 육성해 2030년 이후 그룹 중심축 가운데 하나로 세운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등 '뚝심' 투자를 이어갔습니다. 이 같은 노력들은 오늘날 SK그룹의 바이오 성공신화를 만들게 됩니다.

최종현 회장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은 바이오·제약 뿐만이 아니라, SK그룹의 또다른 도약을 이끈 이동통신 사업 진출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최종현 회장은 '10년 뒤에 무엇을 해야 할 지 늘 생각해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일찌감치 정보통신 분야를 그룹의 미래 중점 사업분야로 정했습니다.

이에 1984년 선경그룹은 미주지역 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 신설했고, 여기에는 당시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최태원 회장이 합류해 힘을 보태게 됩니다. 1989년에는 미국 현지법인 유크로닉스(Yukronics)사를 설립하고 미국 내 이동통신 관련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 'US셀룰러'에 1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당시 선경 직원들이 US셀룰러로부터 월급을 받지 않는 대신 1년가량 작업 현장에서 이동통신 실무를 익히는 조건이었습니다. 또 1991년에는 향후 통신사업을 이끌어갈 주체로 선경텔레콤을 설립하고, 이듬해에는 대한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하는 등 정보통신업 진출을 위한 막바지 담금질에 돌입했습니다.

드디어 1992년 4월 체신부가 제2 이동통신 민간 사업자 선정계획을 발표하면서 당시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은 한국전력, 영국의 보다폰 등 국내외 업체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경쟁에 본격 참여하게 됩니다. 이후 그해 8월 20일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 컨소시엄은 경쟁 컨소시엄 대비 압도적인 점수차이로 사업자로 최종 선정이 됩니다.

[손길승 / 現 SK텔레콤 명예회장: 우리는 통신사업, 그 중에서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정해가지고 열심히 준비를 해서 92년도에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프로젝트에 참여를 해가지고 최고의 우수기업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대통령과 사돈관계라는 논란이 있어 가지고 억울하지만 사업을 자진해서 반납을 하고…]

하지만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 이 사업에 현직 대통령의 사돈기업이 선정되자 특혜논란이 일게 됩니다. 이에 최종현 회장은 "특혜시비를 받아가며 사업을 할 순 없다"며 사업자 선정 일주일 만인 8월 27일 ‘쿨’하게 사업권을 전격 반납합니다. 이 과정에서 체신부는 사업권을 차기 정권으로 이양한다고 공식 발표했고, 이렇게 최 회장의 통신사업 진출 계획은 전면 백지화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그의 염원이 통한걸까요?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최 회장은 재도전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실제 그해 말 체신부는 제1이동통신인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와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작업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전경련에 위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요. 공교롭게도 당시 최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2이동통신 사업권 참여를 포기하고 막대한 인수 자금과 리스크가 예상되는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하는 걸로 전략을 바꾸기로 한 겁니다.

이렇게 선경은 1994년 1월 실시된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의 주식 23%를 공개입찰 발표 당시보다 4배가량 높은 주당 33만5000원(4271억원)에 인수해 이동통신사업 진출의 꿈을 이루게 됩니다.

한편, 당시 이 과정에서 인수비용이 너무 높아 임원들의 반대가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에 대해 당시 최종현 회장은 "지금 2000억원을 더 주고 사지만, 나중 일을 생각하면 더 싸게 사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미래의 기회를 사는 것"이라며 '쿨~' 하게 과감한 투자를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미래를 앞서가는 '힙'한 경영안목을 가진 경영인, 최종현 선대회장은 인재양성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TV 예능교양 프로그램이 어떤 건지 알고 계시나요? '전국 노래자랑' 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1973년 SK가 단독 후원해 47년째 이어지고 있는 '장학퀴즈'가 정답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전국노래자랑보다 무려 7년이나 더 묵은 최장수 예능교양프로그램인데요. 47년간 MBC에서 EBS로 방송국을 옮겨가며 방송이 되고 있습니다.

[차인태 / 前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석좌교수: 장학퀴즈가 처음에는 스폰서 광고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종건, 최종현 회장이) 결단을 내셔서 "우리가 가진 재산은 사람이다! 인재가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특히, 고등학생들한테 힘을 주고 희망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우리가 하자" 해서 참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는 그런 프로그램이 됐죠.]

현재까지도 SK가 꾸준히 후원을 해오고 있고, 중국에서는 ‘장웬방’이란 프로그램으로 방송되면서 중국 지역 장학사업에도 기여해오고 있습니다.

장학퀴즈가 첫 방송을 탄 이듬해인 1974년, 최종현 회장은 사재를 출연해 '한국고등교육재단'도 설립했습니다. '사람을 키우듯 나무를 키우고, 나무를 키우듯 사람을 키운다'는 정신으로 인재를 양성해 나라에 보답한다는 인재보국(人才報國)을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오롯이 인재에만 기댈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현실을 감안해 재단은 국내 우수한 인재들이 선진국에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기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현재 한국고등교육재단은 국내 뿐만 아니라, 지한파(知韓派) 석학을 배출하는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또 고등교육재단은 최 선대회장의 '쿨'한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여서 주목을 받고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이 재단에는 그 흔한 '의무복무' 규정이 없는 데다, 최 회장 또한 "절대 SK로의 입사는 원치 않는다"고 늘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 1995년 이정화 전 SK해운 사장이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교수로 재직하다 SK해운 R&D 팀장으로 입사하자 "자네 왜 여기 있나"라고 물어보면서 이 전 사장을 당황케 한 일화도 '쿨~' 내 나는 그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렇게 최종현 회장은 삶의 마지막까지도 '힙'하고 '쿨'했습니다. 

1998년 8월 폐암으로 타계하기 직전 최 선대회장은 "내가 죽으면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 SK가 장례문화 개선에 앞장서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타개 당시 화장문화가 백안시 되던 때라, 재벌그룹 회장이 몸소 보인 실천은 국내 장례문화의 선진화를 이끄는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최 선대회장의 유훈에 따라 지어진 충남 연기군 세종시에 위치한 '은하수공원 장례문화센터'는 화장장을 혐오시설로 보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부지 선정에 난항을 겪다, 그의 사후 12년만인 2010년에야 문을 열게 됐습니다. 이 시설은 이후 국내 장례문화를 이끄는 선진적인 시설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최종현 회장이 작고 후 22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가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국경제가 IMF 외환위기 이후 첫 마이너스 성장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비관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SK를 이끌면서 '힙'한 경영안목을 가지고 '쿨'하게 사회적 가치를 실천했던 최종현 회장. 그의 모습은 오늘날 위기 속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SK와 한국사회에 큰 울림을 던지고 있습니다.

팍스경제TV 이형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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