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사실 쉬쉬?...‘레벨 2’ 사고 터졌는데도 본사에 늦장 보고
감사의 윤리·독립성·내부청렴도 낙제점 수준...사측은 ‘입막음’ 급급?
자본잠식에 빠진 한국석유공사의 캐나다 법인에서 방만 경영 행태가 대거 적발됐습니다. 생산 시추에 대한 사후 분석 미이행, 광구 생산 현장 사고 축소보고, 법인 기록물 관리 부실, 재무구조 개선 자구노력 미흡 등 총 12건의 지적 사항이 드러난 겁니다.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진행한 감사실은 경고나 징계 등이 아니라 모두 ‘부서주의’ 수준의 가벼운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앞서 ‘2021년 해외사업 종합감사’에서도 10건 이상의 문제가 드러났지만, 이때도 별다른 조치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감사실이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일각에서는 감사실의 온정주의가 예산 손실로 이어져 석유공사의 재무 정상화 노력이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습니다.
◆ 석유공사, 캐나다 현지법인 감사했더니...12건 부적절 행위 적발
한국석유공사 감사실은 이달 초 ‘2022년도 해외사업 경영개선실태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감사는 캐나다 현지법인으로 특정해 진행됐으며 현지법인의 핵심자산 운영과 경영개선 실태, 내부 문제 등을 살펴봤습니다. 기간은 지난해 11월 21일부터 12월 2일까지로 탐사생산감사팀(7명) 주관으로 이뤄졌습니다.
감사 적발 사항은 ▲4D 탄성파 자료 해석업무 미이행 ▲시추 후 종합 사후분석 미이행 ▲광산 생산설비 사고 보고 지연 ▲재무구조 개선 대응방안 미흡 ▲사외이사 관리업무 미흡 ▲회계·자금 업무 내부통제관리 미흡 ▲용역계약 본사 누락 및 계약 업무 소홀 ▲법인 기록물 관리 부실 ▲자체 규정 및 절차서 관리 소홀 ▲비핵심자산 무상처분 등 처리 부적정 ▲주 정부 복무의무 관련 정책 변경 이행계획 수립 미흡 ▲수익성 포트폴리오 관리 미이행 등이었습니다.
◆ 사고 사실 쉬쉬?...‘레벨 2’ 사고 터졌는데도 본사에 늦장 보고
적발된 사안 중에는 단순 업무 미이행 건도 있지만 예산이 크게 손실이 난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2022년 상반기에 캐나다 법인이 관리하는 현지 광구 수처리설비 후단 배기 구간에서 소각탑으로 연결되는 배관의 열손상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 단계는 Level 2. 이는 피해 규모가 최소 1만 달러(1300만원)에서 100만 달러(13억) 미만의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적용하는 단계입니다.
캐나다 법인은 사고 발생 이후 수일이 지날 때까지도 본사에 구체적인 사고 보고서 등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감사 결과 이 법인 책임자 등에 대해서도 별다른 징계 건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감사부서는 해당 현지법인 파견 직원 최고책임자에게 “향후 Level2 이상 사고가 또 발생할 시 조치사항으로 ‘사고보고서와’와 ‘사고조사보고서’를 적기에 제출하라”며 ‘부서 주의’ 수준의 의견 제시에 그쳤습니다. 인명피해 여부와 정확한 피해금액에 대해서 석유공사 측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현지 사외이사에게 불필요하게 예산이 집행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캐나다 현지법인은 회사법 등 현지 법령이 변경되거나 주요 경영 여건이 바뀔 때마다 법인과 관련된 의무사항을 수시로 점검해 석유공사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그간 외국인 사외이사를 둬 왔습니다. 그런데 감사 결과 사외이사를 유지할 의무가 없어졌는데도 내규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사외이사 유지비용이 발생하고 있던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하지만 석유공사 감사실은 관련 책임자에게 내규 개정 검토와 향후 사외이사 관리 방안에 대해 수립하라는 권고만 제시했습니다. 취재진이 해당 사외이사의 근무 기간과 현지 법인의 행정 소홀로 발생한 불필요한 사외이사 비용이 얼마나 집행됐는지 등을 질의했지만, 석유공사 측은 답변을 피했습니다.
석유공사의 감사기준시행세칙에 따른 감사결과 조치 요구 기준은 ▲변상 ▲징계 ▲시정 ▲경고 ▲주의 ▲부서주의 ▲개선 ▲권고 ▲통보 ▲현지조치 등 10개 단계입니다. 이번 특정감사에서 석유공사 감사실은 해당 건들마다 문제점을 인지하면서도 모두 ‘부서주의’ 이하의 ‘솜 방망이’ 요구만 내놨습니다. 감사실은 앞서 2021년에도 ‘해외사업 종합감사’를 진행해 총 13건의 문제를 적발했지만 조치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 감사의 윤리·독립성·내부청렴도 낙제점 수준...사측은 ‘입막음’ 급급?
안일한 행태 때문일까. 석유공사 감사실의 윤리성과 독립성 등은 사실상 낙제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석유공사 감사의 윤리성 및 독립성 등급은 2019년 B등급에서 2020년 D+로 급락했습니다. 2021년에도 C 등급에 그쳤습니다.
내부청렴도 역시 해마다 추락하고 있습니다. 2018년 8.36점(2등급)에서 2019년 7.99점(3등급) 2020년 7.44점(3등급) 2021년 7.19점(4등급)을 받았습니다. 부패방지시책평가 점수 또한 2018년 2등급에서 2019년 3등급, 2020년 3등급, 2021년 4등급으로 낮아졌습니다.
평가를 진행한 공기업·준정부기관 감사평가단은 석유공사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2022년 평가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석유공사의 대외 투명성을 공사 내부적으로 입막음하는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앞서 취재진은 해당 건과 관련해 석유공사 복수의 감사실 관계자를 통해 감사 대상 기관이 캐나다 현지법인이라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이후 추가적인 질의에 대한 답변 자료를 발송하겠다는 입장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최근 감사실이 아닌 홍보팀을 내세워 “답변할 사항이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사실상 감사실에 함구령을 내린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