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보국 45'년, 항공산업 '큰 별' 지다...재계 "우리 사회의 큰 손실"
'수송보국 45'년, 항공산업 '큰 별' 지다...재계 "우리 사회의 큰 손실"
  • 정새미 기자
  • 승인 2019.0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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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한진그룹]

[팍스경제TV 정새미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4월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에서 숙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70세입니다.

조 회장은 1949년 3월 8일 인천광역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서 경복고등학교를 수학한데 이어 미국으로 유학해 美 메사추세츠 주 Cushing Academy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어 인하대 공과대학 학사, 美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학위 등을 취득했습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몸 담은 이래로 반세기 동안‘수송보국(輸送報國)’ 일념 하나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항공사로 이끄는데 모든 것을 바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또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제고하는 등 국제 항공업계에서 명망을 높이며 사실상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스카이팀 창설 당시 조양호 회장 모습 [사진=한진그룹]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습니다. 이후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조 회장은 재직기간 중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에 몸을 담은 이래 회사의 존폐를 흔드는 위기는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 무한 경쟁의 서막을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설 주도로, 그리고 전 세계 항공사들이 경영 위기로 움츠릴 때 앞을 내다본 선제적 투자로 맞서 '창립 50주년'을 맞았습니다.

조 회장은 탁월한 선견지명의 혜안으로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 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으며, 1998년 외환 위기가 정점일 당시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습니다. 또한 이라크 전쟁, SARS 뿐만 아니라 9.11 테러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2003년 조 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습니다.

조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고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저비용 항공사 설립이 필요하다고 확신해 2008년 7월 진에어(Jin Air)를 창립했습니다.

대한항공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습니다.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는 166대로 증가했으며, 일본 3개 도시 만을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습니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으며,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습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습니다.

델타항공 조인트벤처식 당시 조양호 회장 [사진=한진그룹]

조 회장은 대한항공이라는 개별 기업을 넘어,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 자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이어왔습니다.

특히 조 회장은 ‘항공업계의 UN’이라고 불리우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발언권을 높여왔습니다. 조 회장은 1996년부터 IATA의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Board of Governors) 위원을 맡았습니다. 이후 2014년부터는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Strategy and Policy Committee) 위원도 담당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전 세계 항공산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대한민국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같은 조 회장의 IATA에서의 위상은 2019년 IATA 연차총회를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하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레종도뇌르수훈 [사진=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사진=한진그룹]

조 회장은 다양한 부문에서 민간외교관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국격을 높이는 데도 힘을 쏟았습니. 조 회장은 한불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서 양국간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역할을 충실히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습니다.

조 회장은 몽골로부터는 2005년 외국인에게 수훈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조 회장은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더반에서 조양호 회장 모습 [사진=한진그룹]

조 회장의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은 대한민국의 염원이었던 동계올림픽 개최로 이어졌습니다. 조 회장은 국가의 심부름꾼 역할을 한다는 소명 의식으로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년 10개월간 조 회장은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약 64만km(지구 16바퀴)를 이동했습니다. 그 동안 IOC 위원 110명중 100명 정도를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조 회장의 노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이어졌습니다.

조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12월 한국언론인 연합회 주최로 열린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에서 ‘최고 대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2012년 1월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중 첫째 등급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습니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도 8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별세에 "우리 사회에 큰 손실"이라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전경련은 이날 발표한 논평을 통해 "한국 항공·물류산업의 선구자이자 재계의 큰 어른으로서 우리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한 조양호 회장께서 별세하신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전경련은 "조양호 회장은 지난 45년간 변화와 혁신을 통해 황무지에 불과하던 항공·물류산업을 일으켜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며 "덕분에 우리나라는 우수한 항공·물류 인프라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지고 역동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으며 세계 무역 규모 6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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